정주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토르는 MCU 초기작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를 가진 영화였다. 슈퍼히어로 장르 안에서 ‘신화’와 ‘우주’라는 요소를 처음으로 정식 도입한 시도였고, 그만큼 실험적인 면도 강했다. 이번 정주행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당시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그 시도가 지금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로키’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본격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은 단독 시리즈로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 출발점은 이 영화 속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점이 이번 감상의 핵심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 톤이 잡히지 않은 초기 마블의 흔들림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다. 지금의 마블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 영화는 확실히 어색하고 낯설다. 아스가르드의 배경은 화려하지만 무대극처럼 느껴지고, 인물들의 대사는 고전 희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
반면 지구로 배경이 옮겨지면 급격히 현실적이고 가벼운 분위기로 바뀐다. 토르가 망치 없이 일반인처럼 지내는 장면은 코미디에 가깝고, 과학자들과의 관계 설정도 갑작스럽게 전환된다.
이 두 세계의 톤이 잘 어우러지지 않다 보니, 전체 흐름에서 부자연스러움이 생겼다. 지금의 MCU는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잘 섞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당시엔 아직 실험 중이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로키의 시작, 불안정함 속에서 싹튼 서사
이 영화에서 로키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토르의 동생이자, 입양된 아들로서의 정체성 혼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열등감, 형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의 선택은 잔인하기보다는 미성숙하고 충동적이다. 요툰헤임의 왕이 되려는 시도도, 아버지의 사랑을 얻으려는 방식도 결국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런 로키의 모습은 드라마 《로키》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당시에는 불안정한 인물이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그 혼란이야말로 ‘신’으로 거듭나는 서사의 씨앗이었다. 진정한 자유의지를 획득하고,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 긴 여정의 첫 장면이 바로 이 영화 속 로키였다.
초기 히어로로서의 토르, 자격을 시험받는 여정
토르는 영화 초반부터 오만하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그려진다. 아스가르드의 후계자이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든다. 이 때문에 오딘은 그를 지구로 추방하고, 망치도 함께 봉인한다.
이후 지구에서 겪는 사건들은 단순한 모험이라기보다 '자격 시험'에 가깝다. 망치를 다시 들어올리기 위해선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하지만 이 여정은 다소 단조롭게 전개된다. 인간과의 관계 형성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도 명확하지 않다. 결국 망치를 되찾는 장면이 감정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이유다. 토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후속작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시작에 가까운 도입부로 보인다.
비주얼과 연출의 성취와 한계
아스가르드의 시각적 구현은 당시로서는 인상적이었다. 황금빛 궁전,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 전통과 미래가 섞인 의상 디자인 등 전체적으로 ‘신화적 세계’를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CG가 완전히 세련되지는 않았고,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전투 연출은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남겼다. 특히 초반 요툰헤임 전투 장면은 긴장감보다는 장면 구성의 실험성에 집중된 느낌이었다.
반면 지구에서 벌어지는 장면들, 예를 들어 쉴드와의 대치나, 망치를 되찾기 위한 침투 장면 등은 비교적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고, 기술적 제한 안에서도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비주얼은 풍부했지만, 연출의 힘이 그걸 완전히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 보면 ‘볼거리는 있지만, 서사는 부족한’ 느낌으로 정리된다.
한 줄 평과 별점
한 줄 평: 신화의 외형은 갖췄지만, 서사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별점: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