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배치와 붉은 폐허의 지형
타이탄은 한때 문명이 번성했던 행성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하늘이 붉게 물들고 분지와 절벽이 깨진 판처럼 갈라져 있다. 중심부는 그릇처럼 파인 원형 분지에 가깝다. 분지 테두리에는 부서진 기둥과 굴착 흔적이 남아 있다. 지면은 단단한 암석층과 미세한 먼지가 교차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아래가 부서져 가루가 떠오른다. 원형 분지는 자연스러운 무대다.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시선이 쉽게 잡힌다. 외곽에는 경사로 같은 능선이 이어지고 중간중간에 작은 단차가 생긴다. 이 단차가 매복과 회피에 유리한 지점을 만든다. 멀리서는 바람이 쓸고 간 토네이도 자국이 보인다. 기후가 거칠고 건조하다는 뜻이다.
무너진 구조물의 잔해는 길과 벽을 동시에 만든다. 부서진 아치가 가림막이 되고 쓰러진 타워가 낚시대처럼 걸림목이 된다. 표면은 전부가 완전하지 않다. 갈라진 틈과 미끄러운 조각이 꼭 끼어 있다. 그래서 추격과 도주가 짧게 반복된다. 직선으로 달리다 갑자기 멈추고 옆으로 틀어야 한다. 타이탄의 지형은 이런 리듬을 강요한다. 넓은 한 방보다 끊어 치는 합이 맞다. 전투의 분절감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색채 팔레트와 먼지의 광학
하늘은 자주색과 붉은 주황 사이를 오간다. 지면은 황토와 적갈색에 가깝다. 빛이 세지면 먼지 입자가 공기 중에 퍼져 화면이 뿌옇게 흐려진다. 이때 인물의 실루엣이 윤곽만 남고 색은 눌린다. 그림자가 선명하지 않다. 부드러운 반사광이 사방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덕분에 밝고 어두움의 대비가 한 번에 확 치솟기보다는 서서히 변한다. 전투 장면에서는 이 점이 장점이 된다. 갑작스런 번쩍임이 적고 움직임이 이어 보이기 쉽다.
의상의 색은 배경과 명확히 갈린다. 붉은 먼지 위에서는 파랑 계열이 가장 눈에 띈다. 황토빛 지면과 자주빛 하늘 사이에서 흰색이나 금속광도 포인트가 된다. 에너지 효과는 청록과 자홍이 자주 쓰인다. 붉은 배경에서 서로 구분이 쉽다. 먼지가 한 번 피어오르면 색이 약간 씻겨 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그 순간에 금속의 반사가 시선을 이끈다. 팔레트가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그 단조로움이 동작의 선명함을 돋운다.
재료와 표면의 감각
지면은 불에 그을린 암석과 유리화된 조각이 섞여 보인다. 날카로운 조각은 빛을 점처럼 반사하고 거친 면은 빛을 먹는다. 바닥 결이 일정하지 않아서 발이 미끄러질 수 있다. 큰 구조물의 잔해는 금속 뼈대와 세라믹 패널이 남아 있는 모양새다. 패널은 부서져 층을 이루고 간격마다 모래가 끼어 있다. 구조물 사이의 케이블 잔해가 바닥을 건너며 즉석 장벽이 된다. 이 표면은 소리를 잘 전달하지 않는다. 먼지와 모래가 충격을 흡수한다. 그래서 움직임이 커도 소음이 크게 퍼지지 않는다. 긴장감이 유지된다.
작은 돌무더기는 시야를 가리지만 몸을 숨길 정도는 아니다. 대신 그 옆에 파인 그늘이 유효하다. 햇빛이 강한 시간대에는 얕은 그늘도 큰 의미가 있다. 눈의 피로를 줄이는 포인트가 된다. 낡은 기계 부품은 때때로 발판 역할을 한다. 발을 디디면 높이가 반 뼘쯤 늘어나 공격 각도가 바뀐다. 공간이 주는 미세한 이점이 싸움의 리듬을 바꾼다.
동선과 등장 장면의 연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이탄은 긴 협공 장면의 무대가 된다. 주인공들은 분지의 중앙에 함정을 만든다. 주변의 잔해를 활용해 시야를 나누고 이동의 길을 조절한다. 한 그룹은 정면에서 유인을 맡고 다른 그룹은 측면과 상단에서 제어를 담당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원형 포털로 이동 거리를 줄여 준다. 스파이더맨은 지형의 돌출부와 기둥을 잇는 점프 루트를 만든다. 스타로드는 추진 장치를 사용해 공중에서 시간을 벌어 준다. 만티스는 최종 억제를 위해 중앙에 남는다. 이 모든 동선이 중앙으로 수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대편의 힘도 공간을 활용한다. 거대한 암석 조각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분해되어 탄막처럼 쏟아진다. 분지의 바닥이 순간적으로 분해되어 발 아래가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지형의 불안정성이 이야기의 변수로 바로 치환된다. 싸움은 원형 분지의 가장자리와 중앙을 오가는 순환으로 보인다. 중앙에서 몰아붙였다가 외곽으로 틀고 다시 중앙을 노린다. 카메라는 이 움직임을 따라 반 바퀴씩 회전한다. 관객은 길을 잃지 않는다. 배경의 붉은 하늘과 갈라진 바닥이 언제나 같은 좌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타이탄이 과거 번성했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동선에 영향을 준다. 잔해 속 계단과 아치가 아직 남아 있다. 이 유물이 싸움의 발판과 엄폐로 다시 쓰인다. 전투는 과거와 현재를 한 화면에 겹친다. 실패한 문명이 남긴 구조가 새로운 싸움의 도구로 바뀐다. 이런 연결은 서사의 무게를 키운다. 장면이 끝나고 먼지가 가라앉으면 파괴의 흔적만 조용히 남는다. 공간은 다시 말이 없어진다.
정리
타이탄은 붉은 하늘과 깨진 분지가 만든 폐허 무대다. 팔레트는 단순하지만 움직임을 또렷하게 만든다. 지형은 직선과 급회전을 번갈아 요구한다. 잔해와 단차가 숨어 있는 발판이 된다. 인피니티 워의 협공은 이 구조 위에서 설계되었다. 중앙으로 모으고 외곽으로 풀고 다시 중앙에 닻을 내리는 흐름이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타이탄은 끊어 치는 전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붉은 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