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마블 시리즈를 개봉 순서대로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두 번째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의 MCU 흐름에서 《인크레더블 헐크》는 그다지 자주 언급되지 않는 영화다. 감정적으로도, 세계관적으로도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편이다.
다시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 로스 장군이 악역으로 복귀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인물의 초창기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설정이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정주행 목록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보니 더 크게 다가오는 이질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배우의 차이였다. 지금의 헐크는 마크 러팔로가 연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에드워드 노튼이 그 배역을 맡았다. 당시엔 큰 이슈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튼의 헐크는 훨씬 더 내면에 집중하고 있고, 고뇌하는 과학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전의 트라우마, 신체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인간관계의 갈등 같은 요소들이 이야기의 전면에 놓여 있다. 반면 마크 러팔로의 헐크는 약간은 거리감 있는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고, 유머와 팀워크의 중심에 가까워졌기에, 그 둘 사이의 간극이 꽤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인크레더블 헐크》는 마블 영화라기보다는 다른 제작사의 독립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톤도 다르고, 감정선도 무겁고, 전체적으로 지금의 마블과는 결이 달랐다.
로스 장군의 초창기 캐릭터 해석
다시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로스 장군의 캐릭터다. 윌리엄 허트가 연기한 이 인물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목표 중심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헐크를 통제 가능한 무기로 만들겠다는 그의 집착은, 당시에는 과도해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꽤 설득력 있는 구도다.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 그가 악역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이런 집요함은 단순한 개인의 특성이라기보다 시스템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이 영화였다는 사실은, 《인크레더블 헐크》를 단순한 과거 작품이 아닌, MCU의 밑그림 중 하나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통제 사회를 암시하는 시그널이었는지도 모른다.
액션과 연출, 시각적 요소의 성취
기억보다 훨씬 많은 액션이 있었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전투, 마지막에는 헐크와 어보미네이션의 대결까지. 연출은 분명히 강렬했고, 물리적 충돌의 긴장감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시각적 만족감은 지금의 MCU 영화와 비교하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CG 기술이 덜 발전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헐크의 얼굴 표정이나 근육의 질감은 다소 어색하게 보이기도 했다.
반면, 당시로서는 과감한 구도가 많았다. 지붕 위에서 헐크가 떨어질 때의 시점, 헬리콥터에서 비춰지는 도시 전경, 노턴이 점점 변해가는 장면의 편집 등은 지금 봐도 충분히 눈길을 끌었다.
기술은 아쉽지만 연출력은 인상 깊었다는 것이 다시 보며 느낀 점이다.
독립적 영화로서의 성격과 한계
이 영화는 MCU의 일부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다른 히어로들과의 연결점이 거의 없었고, 쿠키 영상에 토니 스타크가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세계관 전체를 아우르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마블 영화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고립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세계관보다는 인물 개인의 서사에 집중되어 있고, 무언가를 쌓아올린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고통과 분노에 집중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 영화의 한계이자 장점이었다. 전체 서사 안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그 자체로는 깊이 있는 인물 드라마로 볼 수 있었다. 단지, 정주행 흐름에서 놓고 보면 조금은 어색하게 끼어 있는 듯한 인상도 있었다.
한 줄 평과 별점
한 줄 평: 헐크의 고통은 묵직했지만, 마블의 색은 아직 흐릿했다.
별점: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