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의 배경과 작품의 위치
《이터널스》는 2021년 11월에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페이즈 4의 세 번째 영화로, 그 전까지의 마블 영화와는 결이 확연히 다른 작품이다. 감독 클로이 자오의 연출 스타일이 전면에 드러나며, 전형적인 영웅 서사가 아니라 인류사 전체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이야기와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이번 재시청의 이유는, 개봉 당시 빠른 템포와 화려한 전투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느꼈던 ‘호흡의 느림’이 시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터널스》는 MCU 세계관에 새로운 ‘신화’를 도입하며, 우주의 창조자 셀레스티얼과 인류의 기원이라는 거대한 설정을 펼쳐놓는다. 하지만 이 방대한 세계관 확장과 10명이라는 주연급 캐릭터의 동시 등장, 그리고 다큐멘터리 같은 잔잔한 연출은 많은 관객에게 낯설고 멀게 다가왔다. 이번 재시청에서는 이러한 장단점을 명확하게 분석해보았다.
다큐 같은 분위기와 아름다운 자연
클로이 자오 특유의 연출은 기존 MCU와 확연히 구별된다. 영화는 CG로 가득 찬 전투보다도,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사막, 초원, 해안, 고대 유적지 같은 공간을 천천히 비춘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내려앉는 장면,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 파도가 절벽에 부서지는 순간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어 마치 예술 영화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시각적 아름다움은 ‘영웅 영화’라는 장르의 틀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하다. 특히 이카리스와 세르시가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인간과 그 역사를 바라보는 신적 존재의 시선을 체감하게 한다.
너무 많은 영웅의 등장과 그 한계
《이터널스》는 MCU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주연급 히어로를 한 번에 도입한다. 이카리스, 세르시, 테나, 킹고, 스프라이트, 마카리, 드루이그, 길가메시, 파스토스, 아작까지 무려 10명의 이터널스 멤버가 동시에 무대에 오른다. 이야기는 각자의 능력과 성격, 인간 사회에서의 역할을 설명해야 했고, 그 결과 서사의 흐름이 인물 소개로 반복적으로 끊겼다.
각 인물이 충분히 감정선을 쌓기도 전에 다음 인물로 넘어가는 구조는 몰입을 방해했다. 예를 들어, 드루이그의 인간 사회 개입에 대한 갈등이나 파스토스의 발명과 후회, 테나의 기억 문제는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깊게 다루기에는 러닝타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관객이 “드라마였다면 훨씬 나았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드라마였다면 더 빛났을 가능성
《이터널스》가 드라마 포맷으로 제작됐다면, 각 캐릭터의 개별 에피소드로 서사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시선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셀레스티얼과의 관계, 팀 내에서의 갈등과 화합을 충분히 풀어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카리의 초고속 능력을 활용한 단독 에피소드, 킹고의 현대 사회 적응기, 스프라이트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외모로 인한 고독 등을 심도 있게 다뤘다면, 관객은 이터널스라는 팀에 더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관 확장의 규모와 거리감
영화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압도적인 존재를 등장시키며 MCU의 스케일을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지구의 운명이 단순히 외계 침공이나 악당의 음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거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설정은 신선했지만, 기존 영웅들의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또한, 이토록 거대한 위협이 존재하는데도 어벤져스나 다른 히어로들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서사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이런 단절은 관객에게 ‘MCU의 일부’가 아닌, 별개의 독립 영화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거리감이 커졌다.
총평
《이터널스》는 MCU의 실험적 도전이자, 영화적 완성도와 장르적 변화를 동시에 시도한 작품이다. 자연과 인류의 역사를 담아낸 시각적 미학은 뛰어났지만, 과도한 캐릭터 수와 거대한 세계관은 감정 몰입을 방해했다. 드라마였다면 이 아쉬움이 상당 부분 해소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재시청을 통해, 이 영화가 단점과 함께 분명한 장점도 지닌 작품임을 다시 확인했다. 다만 MCU 속에서 이터널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별점: 2/5
한 줄 평: 자연 다큐에 가까운 MCU의 실험작, 그러나 드라마였다면 빛났을 잠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