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아이언맨2》는 마블 시리즈를 개봉 순으로 다시 보면서 반드시 다시 짚고 가야 할 작품이었다. 특히 블랙 위도우의 첫 등장이라는 상징성과, 토니 스타크가 본격적으로 '히어로'로 자리 잡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과도기가 담긴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 봤을 땐 속편다운 화려함과 새로운 캐릭터에 집중했었는데, 이번엔 좀 더 차분히 다시 보게 되었다. 정주행을 하면서 전체 서사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보니, 작은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가 겹쳐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항상 어떤 평가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수를 받는다. 다시 보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가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되었다.
블랙 위도우의 첫 등장, 반가움과 어색함 사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나탈리 러시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블랙 위도우다. 스칼렛 요한슨이 처음으로 마블 유니버스에 발을 들인 순간. 지금이야 너무 익숙한 캐릭터지만, 이 영화 속 그녀는 훨씬 낯설고 비밀스럽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신입 사원처럼 등장하지만, 중반 이후 정체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된다. 검은 슈트를 입고 복도를 돌파하는 장면은 짧지만 강렬했고, 이후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가 가진 위상을 예고하는 연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첫 등장은 완전히 매끄럽진 않았다. 극의 전개 속에서 그녀의 역할이 갑작스럽게 확장되는 느낌이 있었고, 그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도 비교적 간결했다. 하지만 이건 향후 마블 영화들이 블랙 위도우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전히 아쉬운 악역의 무게감
아이언맨2에서 토니의 상대는 '위플래시'라는 이름의 악역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과학자이자, 아버지 세대의 복수심을 품은 인물. 전기를 휘두르는 무기로 싸우며, 천재성도 갖추고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다소 부족했다. 명확한 동기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선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쌓이지 않았다. 특히 중후반 이후엔 등장 시간도 줄고, 주요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이 흐릿해진 느낌이 강했다.
이반 반코라는 인물이 보여준 잠재력은 분명 있었지만, 서사의 흐름과 감정선 모두에서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다시 봐도 '좋은 콘셉트를 가진 악역이었지만, 활용은 아쉬웠다'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토니 스타크와 아버지의 애증, 너무 일반적인 거리감
이번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고 있다. 아크리액터의 팔라듐 중독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무기력해져 있었다. 외부의 적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지는 시기였다.
이 와중에 중심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다.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영상 메시지를 통해 등장하며, 토니가 새로운 원소를 개발할 수 있도록 단서를 남긴다. 이 장면에서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널 더 소중하게 여겼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는데, 이 설정은 MCU 전체를 놓고 보면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만 그 감정선이 너무 익숙하고 전형적이었다. '서먹했던 부자 관계가 죽음 이후에야 이해되는 과정'은 수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던 방식이라 이번엔 그리 강한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오히려 토니가 점점 감정을 억누르며 무너지다가,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 깊게 다뤘다면 더 좋은 감상이 되었을 것 같다.
시리즈로서의 다리, 세계관을 넓혀가는 지점
아이언맨2는 단일 영화로만 보기엔 다소 산만한 구조를 가졌다. 토니의 개인 서사 외에도 블랙 위도우, 쉴드, 닉 퓨리, 그리고 향후 어벤져스를 위한 복선까지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일정하게 이어지기보다는 여러 방향으로 가지가 뻗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건 단점이기도 하지만, MCU 전체 흐름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중요한 '중간 연결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특히 쉴드의 개입과, 뉴 멕시코에 떨어진 묠니르에 대한 언급 등은 향후 《토르》로 이어지는 확실한 연결 고리였다. 아이언맨2는 토니 스타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관의 확장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줄 평과 별점
한 줄 평: 확장과 연결은 성공했지만, 감정은 흐릿했다.
별점: ★★☆☆☆½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