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의 배경과 작품의 위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로 동아시아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2021년에 개봉해 페이즈 4 초반부를 장식했으며, 특히 무술 액션과 환상적인 비주얼로 주목받았다. 이번 재시청의 목적은 MCU 속 동양 히어로가 어떤 방식으로 탄생했고, 그의 존재가 앞으로 어떤 서사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다시 점검하는 데 있다.
당시 이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 개봉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며, ‘마블의 새로운 얼굴’로 샹치를 자리매김시켰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지금 다시 보면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동양 히어로의 탄생
샹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인 쉬웬우에게서 혹독한 무술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세계 최강의 무기 ‘텐 링즈’를 다루는 가문의 후계자였으나, 폭력과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도망친다. 영화 초반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의 일상과, 과거에서 도망치려는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족의 과거와 텐 링즈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그는 다시 자신의 뿌리와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샹치는 단순한 무술가에서 ‘영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MCU 내에서 한 문화권의 히어로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조명한 것은 처음이라,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다.
휼륭한 액션과 인상적인 조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액션 연출이다. 버스 위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은 마블 액션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며, 빌딩 외벽과 대나무 숲을 무대로 한 전투는 홍콩 액션 영화의 감성을 물씬 풍긴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한 CGI 전투가 아니라, 무술 choreography와 카메라 워크의 완벽한 조합 덕분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도 크다. 특히 양조위가 연기한 쉬웬우는 악역임에도 깊은 내면과 비극성을 가진 인물로, 영화의 감정적 무게를 책임졌다. 또한 양자경이 연기한 장난은 지혜와 품격을 갖춘 캐릭터로, 샹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멘토 역할을 했다. 이 두 인물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주인공 샹치의 매력을 상대적으로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쉬운 주인공의 매력
샹치는 분명 영웅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이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양조위와 양자경이 만들어낸 강한 존재감 속에서, 그의 서사가 다소 흐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서사의 중심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서, 관객이 그에게 감정 이입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그가 아버지의 유산과 새로운 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감동적이지만, 영웅으로서의 개성을 확립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후속 부재의 공백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쿠키 영상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브루스 배너, 캡틴 마블과 함께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향후 큰 서사에 합류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개봉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샹치가 중심이 되는 후속작 소식은 없다. 이로 인해 첫 등장 당시의 신선함과 기대감이 점점 희석되고 있다.
동양 히어로라는 상징성과 훌륭한 액션 연출이 있었음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확장하지 못한 점은 마블이 놓친 기회 중 하나다. 이번 재시청에서는 그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이어지지 못한 서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총평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뛰어난 액션과 독창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개성이 강렬하게 드러나지 못했고, 후속 서사가 부재한 점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MCU에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고, 향후 멀티버스 사가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별점: 3/5
한 줄 평: 멋진 액션과 독창적인 세계관 속에서 탄생한 동양 히어로,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못한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