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블랙 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다. 다른 히어로들이 대체로 개인의 트라우마나 책임의식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국가’, ‘문화’, ‘전통’,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좀 더 집단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다.
정주행 중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최근 MCU가 다시금 세계관을 넓히는 시도 속에서 이 영화가 어떤 출발점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를 이미 본 상태에서, 초창기 와칸다의 분위기와 틸찰라의 첫 여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감정은 새로웠다.
매력적인 도시 와칸다와 신비로운 문화
《블랙 팬서》의 중심은 단연 ‘와칸다’다. 전통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이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는 그 설정만으로도 관객을 매료시킨다. 풍부한 바이브라늄 자원, 독립된 문화와 언어, 의상과 건축물의 디자인까지 전통과 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블 영화들 중에서도 ‘도시’ 그 자체가 이렇게 캐릭터처럼 존재감을 발휘하는 작품은 드물다. 와칸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정체성과 고민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도시의 세계관은 이후 MCU 전체의 외연 확장에도 영향을 주었고, 블립 이후 혼란에 빠진 세계 속에서 ‘와칸다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왕으로서의 정체성과 도시의 과거
이 영화에서의 틸찰라는 단순히 ‘영웅’이 아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다. 그는 물리적인 적과 싸우기 이전에, ‘명분’과 ‘가치’의 문제 앞에 선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왕위를 잇게 되면서, 그는 와칸다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은둔과 중립을 유지해온 와칸다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해온 것인지, 그 폐쇄성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특히 킬몽거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역사적 상처를 안고 태어난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틸찰라가 외면하고 싶었던 와칸다의 어두운 유산이며, 그의 존재 자체가 왕으로서의 틸찰라를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힙한 분위기와 영웅의 고유성
《블랙 팬서》는 영화 내내 독특한 음악과 미장센을 유지한다. 아프리카 음악과 전통 리듬, 그리고 현대적인 힙합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며 영화 전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웅복 또한 기능적인 면을 넘어서, 와칸다 전통과 상징을 담은 디자인으로 구현된다. 전투 장면 역시 빠르고 강력하지만, 전통무예에서 착안한 동작들이 녹아 있어 다른 히어로들과는 결이 다른 액션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블랙 팬서’라는 영웅은 마블 세계관 안에서도 독자적인 색을 지닌 캐릭터가 된다.
부산의 등장과 반가운 재미
국내 관객에게는 부산 장면도 인상적이다. 중반부 클로와 킬몽거 일당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산의 야경과 카지노, 골목길 추격전이 등장한다.
해외 히어로 영화에서 한국이 본격적인 배경으로 쓰인 것은 드문 사례였고, 그 점에서 팬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줬다.
실제로 부산 시민들의 반응이나 로컬 디테일이 영화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활용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한 줄 평과 별점
한 줄 평: 와칸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왕의 여정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서사였다.
별점: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