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즈 2를 다시 정주행하게 된 이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2는 페이즈 1의 기반 위에 인물, 세계관, 감정을 확장해 나가는 시기였다. 단순히 새로운 히어로들을 소개하는 단계가 아니라 기존 인물들의 내면을 더 깊이 탐색하고 미래의 갈등을 예고하는 장치들이 촘촘히 배치되었다.
2025년 현재 MCU가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는 지금, 과거를 돌아보며 그 뿌리를 되짚는 과정은 마블이라는 세계를 다시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다시 정주행하면서 느낀 점은, 페이즈 2는 겉으로는 유쾌하고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꽤 진지하고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었다. 각 캐릭터가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본격적으로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토니 스타크의 불안과 마블의 철학적 전환
페이즈 2의 시작과 끝은 토니 스타크가 쥐고 있다. 《아이언맨3》에서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슈퍼히어로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조명했고,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무모한 선택을 내린다.
이 흐름은 마블 시리즈 전반의 톤을 바꿔 놓는다. 더 이상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활극만이 아니라, 그들이 마주한 내면의 고통, 책임, 두려움이 정면에서 다뤄지기 시작한다.
결국 토니의 선택은 울트론이라는 결과를 낳고, 이는 《시빌 워》로 이어지는 철학적 대립의 불씨가 된다. 그가 벌인 일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책임과 통제’라는 MCU의 핵심 질문을 만들어낸다.
진정한 의미의 확장: 우주와 세계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페이즈 2의 전환점이다. 이 작품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무대를 확장시켰고, MCU가 단지 ‘지구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가디언즈 멤버들은 어벤져스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정의보다는 생존, 계획보다는 충동, 권위보다는 우정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가볍지 않다.
음악, 연출, 감정의 결까지 완성도 높게 구성된 이 영화는 인피니티 스톤이라는 세계관의 핵심 요소를 중심에 두면서 MCU의 거대한 스토리라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약점과 불완전함의 인정
페이즈 2의 또 다른 특징은 ‘완벽하지 않은 히어로’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는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한 토르의 불안정함이 드러났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는 현대 세계 속에서 길을 잃은 스티브의 외로움과 과거와 현재 사이에 끼인 그의 고뇌가 중심을 이룬다.
특히 버키와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의 재회가 아니라, 미래라는 이질적인 세계에 홀로 떨어진 캡틴이 유일하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을 붙잡고자 하는 절박함처럼 느껴진다.
이런 인물의 결은 마블이 단순히 파워 밸런스가 아닌 감정 밸런스를 고려한 서사로 전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앤트맨의 등장, 그리고 스케일 다운의 미학
《앤트맨》은 페이즈 2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다. 거대한 전투와 우주적 위협이 중심이던 앞선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는 크기를 ‘축소’한다.
평범한 가장 스콧 랭이 딸을 위해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마블 영화 중 가장 따뜻하고 가족 중심적인 색채를 띤다. 앤트맨은 세상을 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싸우는 ‘작은 영웅’이다.
이러한 정서적 리듬은 페이즈 2를 단순히 세계관 확장이 아닌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시기로 만들어낸다.
페이즈 2를 관통하는 감정의 흐름
페이즈 2는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각 인물들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와 사람, 신념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해 어느 선까지 나아갈지를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토니와 스티브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지키려 했고, 그 선택의 차이는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페이즈 2의 마지막을 장식한 앤트맨조차 자신의 책임과 선택을 감정적으로 자각한다는 점에서 전체 흐름과 연결된다.
이 흐름은 단순히 ‘페이즈 3로 넘어가기 위한 브릿지’가 아니라, 앞으로 있을 충돌과 협력, 상실과 극복의 전주곡처럼 느껴졌다.
한 줄 평
한 줄 평: 확장과 응축, 감정과 철학이 공존한 가장 인간적인 마블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