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 이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 페이즈 4에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비록 기대했던 스케일과 완성도 면에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라는 두 핵심 인물의 갈등과 선택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필수 감상 목록에 오른다. 완다가 모든 것을 잃고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의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져버리는 결단은 이후 세계관의 감정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설정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도, 이 작품은 이후 등장할 멀티버스 관련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정주행의 목적이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전체 서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공포 영화 같은 연출
이 작품의 가장 큰 개성은 감독이 공포 영화 문법을 과감하게 적용했다는 점이다. 마블 영화에서 보기 힘든 어둡고 눅눅한 색감, 인물의 심리를 압박하는 클로즈업, 그리고 불시에 등장하는 시각적 충격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완다가 어둠의 책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장면에서는 화면이 미묘하게 왜곡되고, 인물의 눈동자와 표정이 비정상적으로 부각되어 공포감을 높인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세계에서 부패한 자신의 변형체와 마주하는 순간, 배경의 소품과 구조물들은 마치 꿈속 악몽처럼 비틀려 있다. 특히 완다가 카마르타지에 침입할 때, 붉은 연기와 번쩍이는 주문의 빛 사이로 드러나는 그녀의 실루엣은 히어로 영화의 전투라기보다 초자연 스릴러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하다. 카메라가 회전하며 좁은 복도를 따라가거나, 그림자가 인물을 먼저 드러내는 방식 등은 감독이 장르 변주에 얼마나 의도적으로 접근했는지를 보여준다.
완다의 감정선과 멀티버스의 한계
완다의 행동과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드라마 완다비전의 맥락이 필요하다. 그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은 완다가 왜 아이들을 찾아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깊은 상실과 집착이 결합되었는지를 충분히 체감하기 어렵다. 멀티버스라는 설정 역시 기대에 비해 얕게 다뤄졌다. 서너 개의 세계를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론 화려했으나, 각 세계의 법칙과 개성을 깊이 탐구하지 않아 몰입이 어렵다. 예를 들어 대체 지구에서의 스트레인지와 크리스틴의 관계나, 일루미나티의 존재는 짧게 등장하고 사라져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완다가 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보고 눈물짓는 장면,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결단은 강한 여운을 남기며 그녀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서사가 주는 비극성은 멀티버스의 화려함보다 깊게 기억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선택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번 영화에서 단순한 마법사나 전투 요원이 아닌, 스스로의 행복보다 대의를 우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른 세계에서 크리스틴과 함께할 가능성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 행복을 내려놓는다. 그 결정은 짧은 망설임과 긴 안도의 숨이 뒤섞인 표정으로 표현되며, 관객에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특히 마지막 결투에서 그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소환해 싸우는 결단을 내린다. 이 장면은 그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 집념을 보여준다. 하지만 싸움이 끝난 후 그는 승리의 기쁨보다 허무함을 느끼고, 그 표정 속에서 책임이 남긴 무게를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과 표정의 변화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앞으로 더 입체적으로 만들 중요한 축이 된다.
총평과 별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이 시도한 장르 변주의 실험이자, 공포 영화적 색채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이다. 기존의 액션 중심 전개에서 벗어나 긴장감과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연출은 신선했고, 일부 장면은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러나 멀티버스 설정의 깊이와 액션 연출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완다비전의 사전 지식 없이는 주요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자기희생과 완다의 비극적 결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넘어 인물 중심 서사로서 의미를 가지게 했다. 공포 장르의 문법을 마블 세계관에 녹여낸 시도라는 점에서, 그리고 두 주인공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 결말 덕분에 이 작품은 여전히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
별점: 2.5/5
한 줄 평: 공포 영화의 얼굴을 쓴 마블, 아쉬움과 여운이 공존한 멀티버스 여행.